시 이야기
흐린날에는 / 나희덕
리즈hk
2009. 9. 6. 21:01
흐린날에는 너무 맑은 날 속으로만 걸어왔던가.. 습기를 견디지 못하는 마음이여.. 썩기도 전에 이 악취는 어디서 오는지, 바람에 나를 널어 말리지 않고는 좀더 가벼워지지 않고는 그 습한 방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바람은 칼날처럼 깊숙이, 꽂힐 때보다 빠져나갈 때 고통은 느껴졌다. 나뭇잎들은 떨어져나가지 않을 만큼만 바람에 몸을 뒤튼다. 저렇게 매달려서, 견디어야 하나 .. 구름장 터진 사이로 잠시 드는 햇살. 그러나, 아, 나는 눈부셔 바라볼 수 없다. 큰 빛을 보아버린 두 눈은 그 빛에 멀어서 더듬거려야 하고 너무 맑게만 살아온 삶은 흐린 날 속을 오래오래 걸어야 한다. 그래야 맞다, 나부끼다 못해 서로 뒤엉켜 찢겨지고 있는 저 잎새의 날들을 넘어야 한다. - 나 희 덕 - ... 가끔은 미칠 것 같은 날이 있다. 오늘 같은 날이다. 마셔도 마셔도 해소되지 않는 갈증 먹어도 먹어도 계속되는 고픔 닫아도 닫아도 계속 열리는 마음 풀어도 풀어도 풀리지 않는 머리속.. 하루종일 나뭇잎 흔들리듯 흔들리는 날이 있다. 2009.9.3 --- 당신을 전부 잊어버렸단 건 거짓말이야. 난 가끔 궁금해하곤 하지. 아직도 당신은 그렇게 아이처럼 웃는지, 아직도 그렇게 먼 곳을 바라보며 이야기 하는지, 아직도 당신이 세운 그 굳건한 성 속에서 당신만의 꿈을 꾸고있는지, 세상은 아직도 당신에게 그렇게 거칠고 낯선지, . . . 당신을 생각하면 내 마음은 캄캄한 동굴속에서 헤매는 어린아이처럼 두렵고 무서웠어. 나는 당신을 사랑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당신이 내게 준 깊은 외로움 탓이었지. 아주 멀리 떠나왔지만 아직도 나는 캄캄한 동굴속에 갇힌 꿈을 꾸곤 해. 황 경 신 ... 내 머리속이 하얗게 되어도 괜찮아~ 난 다 기억하니까... 내 가슴속이 뻥 뚤려도 괜찮아~ 난 다 품었으니까.. 내 기억이 다 소멸되어도 괜찮아~ 난 다 떠올릴 수 있으니까.... 내 사랑이 떠나도 괜찮아~ 난 지금 사랑으로 충분하니까... 200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