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남는 이야기

지우개

리즈hk 2006. 6. 24. 00:26

지우개

 


나의 하루를 채 쓰기도 전에
지워야 할 것들이 많아 힘들었지
하루치의 이기심,
또 그만큼의 자존심과
다른 이에 상처를 준 많은 단어들
온전히 지우고 다시 써내려 갈 수 있다면
내 몸이 닳아 없어져도 행복하겠지

내게 불필요한 것들을
억지로 지워내다
때론 찢어지는 고통을 견뎌내야 하겠지만

아문 상처 사이로 새살이 돋아나듯
내 남루한 기억들을 걷어내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하루를 잘 써 내려가는 일보다
하루를 잘 지워내는 일이
더 중요한 것을 깨닫는 날

지우개 똥보다 못한 욕심 때문에
난 몇 번이고 지우고 다시 썼던가

빼곡이 채워진 성급함보다
텅 빈 여백의 쓸쓸함을 즐길 수 있을 때까지
욕심 없이 버려야 한다
깨끗하게 지워야 한다

 

 

 

-'좋은 글' 중에서-

 

 

....

 

 

어제 받은 묵상글입니다.

 

애써 모른척 하려는데..

어제도..

오늘도 계속 맘에 남아 이렇게 올려봅니다.

 

내 마음을 들킬 것 같아서 애써 모른했는지도 모릅니다.

 

 

지우고, 버린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오늘 기도 시간에 내내..

버리게 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이런 저런 것들을 내 맘 속에서 지울 수 있도록~

버릴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그랬기에 이 글이 마음에 와 닿았는지도 모릅니다.

제 맘이 그랬었기에~

 

 

집에 돌아와서 다시 읽었습니다.

어제와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지우개~

지우개~~

 

결국 이 밤에 이 글을 올리고 맙니다.

 

 

 

가끔씩 이런 마음과는 반대로 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내가 상처를 주었다는 것을 정말로 모르고 싶고..

상처받으면 바로 앙갚음?을 해 버리고 싶습니다.

..

..

이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이 있는데..

난 왜 그게 안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바보라서 그럴까요~?

 

 

~~~

 

 

지난 주~

침묵기도가 끝나고 나서..

대주교님 집전의 평일미사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자매가 내가 앉은 자리로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찜해 놓은 내 자리를 니가 앉아서 대따리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기도가 제대로 안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말에 아무런 대꾸도 못했습니다.

할 말이 없었습니다.

 

성당의 자리에 이름이 붙어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몰상식한 말을 하는 사람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막 기도가 끝나서 기분이 살짝 업 되어있고..

대주교님 미사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기에 아주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로 인해..

미사는 물론이고~ 기도를 했다는 것 조차 잊어버릴 만큼 짜증이 나더군요~

 

 

 

지우개가 아니라~

굵은 매직으로 대자보를 써서 성당 벽에 붙이고 싶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일주일이 지난 오늘~

그 자매의 뒷자리에서 기도를 하는데.. 역시 분심이 들더군요~

맘이 자꾸 다른 곳으로 향하더군요~

다잡고 기도를 끝냈습니다.

 

응답은 역시 지우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우연찮게 같이 점심을 먹게 되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하는 것에 이력이 나 있어서..

밥도 잘 먹을 수가 있었지요~

 

그러나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또 살짝 기분이 상해지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이 글을 꺼내 읽고..

제 맘을 다스리려고 노력해봅니다.

 

 

타인을 바꾸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하면 아무 일도 아니란 걸~

잠깐의 면담을 통해 또 깨닫습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선 자주 면담을 해야겠습니다.

 

 

내 안의 나를 키우기 위해서..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내가 변화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도 마음 속 저 편에선~

자꾸 소리치고 있습니다.

 

악마의 유혹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