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스스로
아버지는 고향 집 맞은편에 있는 널따란 땅을
마호가니 묘목을 기르는 사람에게 임대했다.
그는 묘목을 심은 뒤 물을 뿌리러 나왔다.
이상한 것은 물 주는 날짜나 물의 양이
제멋대로라는 사실이었다.
사흘이나 닷새, 열흘 만에 올 때도 있었다.
물을 많이 줄 때도, 겨우 적실 정도만 줄 때도 있었다.
더욱 이상한 일은 묘목이 메말라 죽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올 때마나 묘목 몇 그루를 가져 와 심었다.
처음에는 게을러서 묘목을 말려 죽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게으른 사람이 새 묘목을 가져오는 것도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해 그에게 물었다.
“날마다 물을 주면 마호가니가 말라 죽지 않을 거 아녜요?”
그는 말했다.
“나무는 한 두 달 가꿔 수확하는 채소와 달리
무릇 백 년을 내다보고 길러야 하네.
나무 스스로 땅속에서
물이 나오는 곳을 찾을 줄 알아야 하지.
내가 물을 주는 것은 하늘을 흉내 내는 것뿐일세.
하늘이 예고하고 비와 바람을 내린 적 있던가?
불규칙한 날씨에 적응 못한 묘목은 자연스레 말라 죽지만,
죽자사자 땅속으로 파고들어 수원을 찾아내는 나무는
백 년이 지나도 거뜬히 살아 남는다네.”
그는 말을 이어 나갔다.
“만일 내가 시간 맞춰 꼬박꼬박 물을 준다면
묘목은 의지하는 습관이 생길 걸세.
뿌리가 땅 표면에서만 겉돌고 깊게 파고들지 못해
물 주는 횟수가 줄면 금세 말라 죽지.
살아남는다 해도 세찬 바람에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기 쉽지.”
나는 큰 감명을 받았다.
어디 나무뿐이랴, 사람도 마찬가지다.
- 한페이, ‘뭐 될래?’ 중에서 -
스스로 무엇을 해 낸다는 사실에 흡족함을 느낀다.
스스로 해냄에 대한 자부심에 더불어~
힘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것이 있다.
중도에서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누차 얘기했지만 포기는 배추를 셀 때의 단위일 뿐이다.
나는 그렇게 마호가니처럼 내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스스로 물길을 찾아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대견하다고 여기지 않아도 될 일이다.
그것이 나 이기에 가능하단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없이 내 뱉는 소리들은 나를 힘들게 할 때도 있다.
그러나 몰라서 하는 행동이라 어쩔 수 없이 받아안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많은 정보의 홍수속에 살고 있다.
그래서 어떤 것이 사실적인 정보이고,,
어떤 것이 지어낸 정보인지를 잘 알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믿을 수 없다고......
믿음에 대한 얘기는 결국에 나라는 선상에 놓여진 일이다.
누군가의 손길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
세상엔 미운 일보다 사랑을 나누는 일이 더 많다.
고마움,,,
그것은 당사자가 느껴야지...
고마움을 강요한다는 것이 상대를 얼마나 당혹하게 하는 일인지 아는가?
나는 지금 땅속의 물길을 찾아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