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긋기
10년이 지나서
그 시집을 펼치니 책의 곳곳에
밑줄이 그어져 있다
어떤 이는 노란 색연필로
끊길 듯 흐리게 밑줄을 치고
내가 아는 어떤 이는
자를 대고 반듯하게 줄을 긋는데
어떤 은밀한 문장과 낱말 아래
내 몸은 깊숙히
숨어들었던 것일까
지난 10년 들쭉날쭉
밑줄 그인 곳
훑으며 행간을 건너가 보는데
갑자기 천둥 번개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네
그래도 실내는 여전히 무더워
계속 돌고 있는 선풍기 바람
그 바람이 콘택트 렌즈를 낀
내 눈의 시력을 말려
그만 책장을 빠져나가고 싶은데
앞장엔 연필로
뒷장에는 색연필로
함부로 밑줄 그인 내 삶의 안과 밖
-백미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