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남는 이야기

친구야

리즈hk 2009. 6. 9. 23:58
친구야 친구야, 겉으로 보이는 게 내 참모습은 아니란다. 겉모습은 다만 걸친 옷에 지나지 않아. 너의 의심으로부터 나를, 나의 소홀함으로부터 너를 지켜 주려고 조심스레 지은 옷이란다. 그리고 친구야, 내 안의 `나` 는 언제나 침묵의 집에 머무르고 있어서 끝끝내 알아볼 수도 다가갈 수도 없단다. 굳이 내 말이나 행동을 네가 믿어 주길 바라진 않겠어. 내 말은 바로 네 생각이 소리로 나온 것이고 내 행동은 네 바람이 실행에 옮겨진 것뿐이니까. 네가 "서풍이 부는구나." 하고 이야기하면 나도 "맞아, 서풍이야." 하고 말한단다. 그것은, 내 마음이 바람이 아니라 `바다` 에 가 있다는 것을 네게 굳이 알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야. 바다를 떠다니는 내 마음을 너는 이해할 수 없고 나도 네가 이해하기를 바라지 않아. 나 홀로 바다에 있고 싶으니까. 친구야, 네게는 낮일지라도 내게는 밤이란다. 그럴 때에도 나는 언덕 위를 춤추는 한낮의 햇살과 계곡을 감도는 자줏빛 그림자에 대해 이야기하지. 너는 내 어둠이 부르는 노래를 듣지 못하고 별을 향해 퍼덕이는 내 날개짓을 볼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 네가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게 나도 좋아. 나 홀로 밤과 있고 싶으니까. 네가 내 천국으로 올라갈 때 나는 내 지옥으로 내려간단다. 건널 수 없는 골짜기 저편에서 네가 내게 "나의 벗, 나의 동지!" 하고 소리치고 나 또한 네게 "나의 동지, 나의 벗!" 하고 답하지. 내 지옥을 네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아서야. 지옥의 불길에 네 눈이 멀 것이고 지옥의 연기가 네 폐에 가득 찰 테니까. 그리고 나는 내 지옥을 너무 사랑하기에 네가 거기 들르는 것을 바라지 않아. 나 홀로 지옥에 있고 싶으니까. 너는 진리와 아름다움과 의로움을 사랑하고 그래서 너를 위해 나는 그런 것을 사랑하는 일이 바람직하고 어울린다고 말하지. 그렇지만 속으론 그런 너의 사랑을 비웃는단다. 그래도 내 웃음을 네게 보이고 싶지 않아. 나 홀로 웃고 싶으니까. 친구야, 너는 착하고 신중하며 지혜로워. 아니, 완벽해, 그래서 나 역시 조심조심 지혜로이 너와 이야기를 나눈단다. 그래도 나는 광인이야. 그렇지만 나는 광기를 숨긴단다. 나 홀로 미치고 싶으니까. 친구야, 너는 내 친구가 아니야. 하지만 어떻게 너를 이해시키지? 너와 나는 갈 길이 서로 다른데 우린 이렇게 함께 걷고 있구나 손에 손을 잡고서. -칼릴 지브란- so goodb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