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파냐 북부 바스크 지방(Basque Provinces)의 팜플로나(Pamplona) 교외에 있는
하비에르 가족 성(城)에서 태어난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우스(Frianciscus Xaverius)는
파리 대학에서 공부하고 1528년에 학위를 받았으며,
그곳에서 예수회의 설립자인 로욜라(Loyola)의 성 이냐시오(Ignatius, 7월 31일)를 만났다.
처음에는 이냐시오의 생각에 반대했던 그는 생각을 바꾸어
예수회의 설립회원 7명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그들은 1534년에 파리(Paris) 북부 몽마르트르(Montmartre)에서 첫서원을 발하였다.
그는 이냐시오와 다른 4명의 회원들과 함께 1537년 이탈리아의 베네치아(Venezia)에서 서품을 받고, 그 다음해에 로마(Rome)로 파견되었으며,
예수회가 성좌로부터 공식 승인을 받은 1540년에는 시몬 로드리게스(Simon Rodriguez) 신부와 함께
예수회원으로서는 첫 번째 선교사로 임명되어 동인도로 파견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포르투갈의 리스본(Lisbon)에서 발이 묶였다.
왜냐하면 국왕 후안 3세(Juan III)가 로드리게스 신부는 남으라고 명했기 때문이다.
이 일로 인해 프란치스코는 8개월을 하릴없이 지내다가 1541년 4월 7일에야 떠날 수 있었는데,
이때는 교황으로부터 인도의 교황대사 자격을 부여받은 뒤였다.
그는 13개월 후에 인도 중서부 고아(Goa)에 도착하였고,
5개월 동안은 병자와 죄수들을 찾아보는 일과
어린이의 신앙교육 및 그곳의 포르투갈 사람들의 비도덕성을 바로잡는 일에 착수하였다.
그 후 그는 인도의 남단 타밀나두(Tamil Nadu)에 있는
코모린 곶(Cape Comorin)에서 3년을 지내면서 파라바족(Paravas)을 사목하여
수천 명의 개종자를 얻었다.
1545년에 그는 말레이시아의 말라카(Malacca)를 찾아갔고,
1546년부터 1547년까지는 뉴기니(New Guinea)와 인접한 몰루카(Molucca) 제도와
필리핀과 가까운 모로타이(Morotai) 섬을,
1549년부터 1551년에는 일본까지 왕래하였다.
그는 인도의 첫 번째 예수회 관구장이 되었다.
그 후 그는 중국에 들어갈 계획을 세우고
안토니우스(Antonius)라는 중국인 청년과 복음을 전하려고 출발하였으나
광둥항(廣東港)이 바라보이는 상치안(Sancian) 섬에서 운명하고 말았다.
결국 그는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도 대륙으로 들어가지 못하였다.
흔히 그는 사도 바오로(Paulus)에 버금가는 위대한 선교사로 불린다.
그는 수많은 위험과 역경을 딛고 상상할 수 없는 거리와 지역을 여행하였고,
그 자신이 개종시킨 교우 수만 하더라도 1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그래서 그는 ‘인도의 사도’, ‘일본의 사도’라고 불리며,
1619년 시복되고 바로 이어서 162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Gregorius XV)에 의해
자신의 사부이자 동료인 예수회의 창설자 로욜라(Loyola)의 성 이냐시오(Ignatius, 7월 31일)와 함께
시성되었다.
그리고 1927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는
그를 리지외(Lisieux)의 성녀 테레사(Teresia, 10월 1일)와 함께
'가톨릭 선교활동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오(Frianciscus Xaverius)
나의 사랑하는 큰 아들의 축일이다.
굿뉴스에 가서 검색을 하니..
이런 내용이 나온다.
참 한심한 나를 볼 수 있다.
성인과 나를 비교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참 그렇다.
아들의 축일을 축하하며,,
먼 훗날~
널 마음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알아주었음 좋겠다.
미사 참례와 축일 생미사를 봉헌한다.
아들~
건강하게 잘 지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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