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 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기형도-
결혼이란 '빈 들판에 스스로 집 짓고 스스로 갇히는 일이다’고
나는 정의한 적이 있다.
기형도(1960~1989)의 시‘빈집’을 읽기 전의 일이었다.
결혼하는, 시를 쓰는 후배에게 그런 말을 했다.
결혼으로 설레던 후배는 축하의 말을 들으려다
뜻밖의 내 말에 잠시 혼돈스러워했다.
나는 상투적인 축하의 메시지 대신 아픈 소리를 택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 집에 갇히면 다시는 나오지 마라.
그 집을 빈집으로는 만들어서는 안 된다.”
연애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기차를 타는 일이다.
그 기차의 종착역은 ‘결혼’이라는 역이다.
그러나 많은 승객들이 그 종착역에 온전하게 도착하기 힘들다.
함께 타지만 각자 다른 역에서 기차를 갈아타는 사람들이 역마다 붐빈다.
그걸 하느님도 탓할 수 없다.
그것이 사람의 사랑이니까.
기형도 시인은 요절했다.
그래서 그의 연애는 결혼이란 종착역에 도착하지 못했지만,
그가 죽은 뒤 가진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에
기록된 그의 연애는 상처투성이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그는 사랑을 잃었다고 고백하고 ‘썼다.’
그리고 그는 ‘잘 있거라’고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그건 사랑과의 작별이 아니라 ‘짧았던 밤들’‘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
아무 것도 모르던 촛불들’과의 작별이다.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에게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에게도 ‘잘 있거라’고 작별을 한다.
그는 사랑과 연애의 배경과 배후가 되었던
모든 것들에게 작별을 하고 떠났다.
‘잘 있거라’와 ‘잘 가거라’는 다르다.
‘잘 있거라’는 스스로 떠난다는 것이다.
그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에게 인사를 하고 떠났다.
그리고는 우리들 곁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연애는 사랑이다.
둘 다 영어로는 LOVE로 쓴다.
그러나 연애와 사랑의 사전적 정의는 다르다.
사랑은‘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이고
연애는‘인간의 육체적 기초 위에 꽃피는 남녀 간의 자연스런 애정’이다.
사랑은 감정이고 연애는 육체가 배경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런 사전의 통속적인 해석이 슬프다.
보라!
시인은 사랑을 읽고 그 고통이 시력을 잃는 아픔과 같아
‘장님처럼’ 더듬어 문을 잠그고 지상의 빈 들판에 빈집 한 채를 남기고 떠났다.
시인은 스스로 사랑이란 집을 지어 갇히는 일 대신
빈집에 지독한 사랑을 가두어버렸다.
그러나 그 이유는 ‘질투’였다.
시인은 또 이렇게 썼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의 시 ‘질투는 나의 힘’ 끝부분에서)
사랑을 빈집에 가두고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던 시인.
그 빈 집에 누가 갇혀 있을까? ..
정일근 시인 ..
...
17-12-07에 잡아둔 글인데...
사용을 했었는지~?
아님 그저 방치한 채로 메일임시 보관함에 들어 앉아있는지 모르겠다.
이제라도 빛을 보여주어 광명을 찾게 해 주었으니 고맙다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