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음 고요히 / 성낙희 그 마음 고요히 말로써 말하려 말자. 서둘러서 되는 일이란 하나도 없다. 사철 먼 하늘 바래 제 잎사귀로 제 혼을 닦는 푸나무처럼 그렇게 있어야겠다. 키보다 자란 흰 뿌리 내 안에 내리고 물 위에 떠오르는 蓮잎 같은 마음 하나 그 마음 고요히 그렇게 와서 닿기만 하면 된다. 말로써 말하려 말자. -성.. 시 이야기 2009.06.23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에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 시 이야기 2009.06.12
아침마다 눈을 뜨면 / 박목월 아침마다 눈을 뜨면 사는 것이 온통 어려움인데 세상에 괴로움이 좀 많으랴 사는 것이 온통 괴로움인데 그럴수록 아침마다 눈을 뜨면 착한 일을 해야지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서로 서로가 돕고 산다면 보살피고 위로하고 의지하고 산다면 오늘 하루가 왜 괴로우랴 웃는 얼.. 시 이야기 2009.06.12
6월 6월 하루종일 당신 생각으로 6월의 나뭇잎에 바람이 불고 하루 해가 갑니다 불쑥불쑥 솟아나는 그대 보고 싶은 마음을 주저앉힐 수가 없습니다 창가에 턱을 괴고 오래오래 어딘가를 보고 있곤 합니다 느닷없이 그런 나를 발견하고는 그것이 당신 생각이었음을 압니다 하루종일 당신 생각으로 6월의 나.. 시 이야기 2009.06.12
사랑은 / 오철수 사랑은 문을 열자 더운 기운이 훅 끼쳤다 나는 밖에서 “참 따뜻하네요” 했고 동시에 여자는 안에서 “상쾌한 공기가 들어오네요” 했다 거기 잠깐 눈웃음 머물고 사랑은 늘 그랬다 완전히 다른 말이면서도 같은 동행 만나야 할 이유도 헤어져야 할 이유도 늘 함께하는 동시였다 내가 너를 향하고 있.. 시 이야기 2009.06.06
빗장 빗장 내 마음이 당신을 향해 언제 열렸는지 시립기만 합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논둑길을 마구 달려보지만 내달아도 내달아도 속떨림은 멈추지 않습니다. 하루종일 시도 때도 없이 곳곳에서 떠올라 비켜 주지 않는 당신 얼굴 때문에 어쩔 줄 모르겠어요. 무얼 잡은 손이 마구 떨리고 시방 당신 생각.. 시 이야기 2009.05.30
님의 침묵 - 한용운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 시 이야기 2009.05.30
비가 와도 좋은 날 / 이외수 비가 와도 좋은 날 옛사람을 기다리는 동안은 창밖에 비가 와도 좋다. 밤은 넝마처럼 시름시름 앓다 흩어져가고 자욱한 안개 님의 입김으로 조용히 걷히우면 하늘엔 비가 와도 좋다. 세상은 참 아프고 가파르지만 갈매기도 노래하며 물을 나는데 옛 사람이 그리울 때만은 창밖에 주룩주룩 비가 와도 .. 시 이야기 2009.05.22
진실로 그를 사랑한다면 / 이정하 진실로 그를 사랑한다면 그에게 더 이상 줄 것이 없노라고 말하지 말라. 사랑은, 주면 줄수록 더욱 넉넉히 고이는 샘물 같은 것. 진실로 그를 사랑한다면, 그에게 더 이상 줄 것이 없노라고 말하지 말고 마지막 남은 눈물마저 흘릴 일이다. 기어이 가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붙잡지 말라. 사랑은, 보내 놓.. 시 이야기 2009.05.11
시선 / 마종기 시 선 어떤 시선에서는 빛이 나오고 다른 시선에서는 어두움 내린다. 어떤 시선과 시선은 마주쳐 자식을 낳았고 다른 시선과 시선은 서로 만나 손잡고 보석이 되었다. 다 자란 구름이 헤어질 때 그 모양과 색깔을 바꾸듯 숨 죽인 채 달아오른 세상의 시선에 당신의 살결이 흩어졌다. 어디서 한 마리 새.. 시 이야기 2009.05.04